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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분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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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인도의 분할은 1947년 영국령 인도 제국이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분할되면서 발생한 사건이다. 이는 벵골과 펀자브 지방의 분할을 포함하며, 영국령 인도군, 공무원, 철도 등 자산도 분할되었다. 분할은 대규모 인명 손실과 이주를 야기했으며, 파키스탄과 인도는 각각 1947년 8월 14일과 15일에 독립했다. 분할의 배경에는 1905년 벵골 분할, 제1차 세계 대전, 몬태규-첼름스퍼드 개혁, 두 국가 이론, 1930년대 지방 선거, 8월 제안과 크립스 사절단, 인도를 떠나라 결의안, 영국 노동당의 승리, 1946년 인도 지방 선거, 내각 사절단, 직접 행동의 날 등 다양한 요인이 작용했다. 분할은 펀자브, 벵골, 신드, 구자라트, 델리 등 여러 지역에 영향을 미쳤으며, 대규모 난민 발생과 이주를 초래했다. 분할은 오늘날까지도 인도 아대륙에 긴장을 유발하는 논란의 대상이며, 예술 작품을 통해 묘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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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47년 영국령 인도 - 인도 분할에 대한 반대
    인도 분할에 대한 반대는 종교적, 정치적, 사회적 이유로 통합된 인도가 더 나은 미래를 제공할 것이라는 믿음 하에 다양한 단체와 주요 인사들에 의해 표명되었으며, 분할이 무슬림을 약화시키고 불안정을 야기할 것이라는 우려와 함께 인도의 재통일을 옹호하는 주장도 있었다.
인도의 분할
지도
기본 정보
위치영국령 인도 제국
날짜1947년 8월
결과인도 자치령파키스탄 자치령으로 영국령 인도 분할
난민 위기 발생
사망자20만 ~ 200만 명
이재민1,400만 명
배경
관련 운동인도 독립 운동
파키스탄 운동
관련 사건아시아 탈식민지화
명칭
영어Partition of India
힌디어भारत का विभाजन (바라트 카 비바잔)
우르두어ہندوستان کی تقسیم (힌두스탄 키 타크심)
تقسیم ہند (타크심-에-힌드)
ہندوستان کا بٹوارا (힌두스탄 카 바트와라)
참고
관련 사건방글라데시 독립

2. 배경

1947년 인도 분할은 영국령 인도 제국의 해체와 함께 인도파키스탄이라는 두 개의 독립된 자치령이 탄생하는 과정에서 정치적 국경과 자산이 분할된 사건이다.[237][238] 인도 자치령은 오늘날 인도 공화국이며, 파키스탄 자치령은 현재 파키스탄 이슬람 공화국과 방글라데시 인민 공화국으로 분리되었다. 이 분할은 1947년 인도 독립법에 명시되었으며, 특히 영국령 인도의 벵골펀자브 두 지방이 분할되었다. 이 지방의 무슬림 다수 지역은 파키스탄에, 비무슬림 다수 지역은 인도에 할당되었다. 분할된 다른 자산에는 영국령 인도군, 인도 왕립 해군, 인도 왕립 공군, 인도 공무원, 철도, 중앙 재무부 등이 포함되었다.[239]

분할로 인해 대규모 인명 피해와 이주가 발생했다. 약 1,400만~1,800만 명이 이주했으며, 분할 기간 동안의 사망자는 100만 명 안팎으로 추산된다. 1948년 1월, 마하트마 간디는 폭력을 멈추기 위해 단식을 시작했고, 여러 종교 및 정치 지도자들의 촉구로 단식을 마쳤다.

1918년 7월, 인도의 국무장관 에드윈 새뮤얼 몬태규와 인도 총독 프레드릭 존 네이피어 더시거 3세 남작 첼름스퍼드 경은 인도 전역을 순방한 후 보고서를 제출했다.[17] 1919년 12월, 몬태규-첼름스퍼드 개혁으로도 알려진 1919년 인도 정부법이 통과되었다.[17] 이 법은 주 의회와 제국 입법 평의회를 확대하고, 인도 정부의 "관료 다수당" 의존을 폐지했다. 국방, 외교, 형법, 통신, 소득세 등은 인도 총독과 뉴델리 중앙 정부가 유지했지만, 공중 보건, 교육, 지방세, 지방 자치 등은 주로 이관되었다. 주에서는 교육, 농업, 인프라 개발, 지방 자치 등은 인도 장관과 입법부의 영역이 되었고, 관개, 지방세, 경찰, 교도소, 언론 통제 등은 영국 주지사의 관할권에 남았다.

더 많은 인도인들이 선거권을 얻었지만, 국가 차원의 투표권을 가진 사람들은 전체 성인 남성 인구의 10%에 불과했다.[17] 주 입법부에서 영국은 협력적인 농촌 후보들에게 더 많은 의석을 할당했다. 비브라만, 토지 소유자, 사업가, 대학 졸업생을 위한 의석이 예약되었다. 무슬림, 시크교도, 인도 기독교인, 앵글로 인도인, 거주 유럽인을 위한 의석도 예약되었다. 몬태규-첼름스퍼드 개혁은 인도인들에게 입법권을 행사할 기회를 제공했지만, 제한적인 유권자 수, 소규모 예산, 영국의 통제 수단으로 여겨지는 의석 할당 등에 의해 제한되었다.[17]

2. 1. 제2차 세계 대전 전

1905년 커존 경은 벵골 주를 무슬림 다수 지역인 동벵골과 아삼 주와 힌두교 다수 지역인 벵골 주(오늘날 인도의 서벵골주, 비하르주, 자르칸드주, 오디샤주)로 분할했다.[6] 벵골 분할은 민족주의 정치를 변화시켰다.[6]

동벵골의 무슬림 농민들에게 토지를 임대해 준 벵골의 힌두교 엘리트들은 이에 항의했다. 벵갈리 힌두교도 중산층(''브하드랄로크'')는 새로운 벵골 주에서 비하르와 오디샤 사람들에게 수적으로 압도당할 가능성에 우려하여 커존의 행위가 그들의 정치적 주장에 대한 처벌이라고 생각했다.[6]

커존의 결정에 대한 광범위한 항의는 주로 영국 제품 불매 운동인 ''스와데시''('인도 제품을 사자') 형태를 취했으며, 산발적이지만 노골적으로 시민을 공격하는 정치적 폭력으로 이어지기도 했다.[7] 뱅킴 찬드라 차터지(Bankim Chandra Chatterjee)의 노래 제목이기도 한 ''반데 마타람''(벵골어로 '어머니께 경배'라는 뜻)은 벵골, 인도, 힌두 여신 칼리를 다양하게 상징했다.[8] 주간타르(Jugantar)와 같은 단체의 젊은이들이 공공 건물에 폭탄을 설치하고 무장 강도를 저지르며 영국 관리들을 암살하는 등 구호의 종교적 선동과 분할에 대한 정치적 분노가 결합되었다.[8][10]

벵골 분할에 대한 힌두교도들의 항의와 힌두교 다수파를 지지하는 개혁에 대한 두려움은 1906년 인도의 무슬림 엘리트들이 민토 경(Lord Minto)에게 무슬림을 위한 별도의 선거구를 요구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이전 통치자로서의 지위와 영국과의 협력 실적을 반영하여 총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에 비례하는 대표성을 요구했다. 이는 1906년 12월 다카에서 전인도 무슬림 연맹의 창설로 이어졌다.

1871년 영국령 인도 인구 조사 이후, 북인도 전역의 무슬림 지도자들은 새로운 힌두교 정치 및 사회 집단의 적대감을 경험했다.[11] 아리아 사마지(Arya Samaj)는 소 보호 운동을 지지했을 뿐만 아니라[12] 인구 조사의 무슬림 수에 놀라 무슬림을 힌두교로 "개종"시키는 행사를 조직했다.[11] 통합주에서 무슬림은 19세기 후반 힌두교 정치적 대표성이 증가하고 힌두교도들이 힌디어-우르두어 논쟁과 1893년 소 도살 반대 폭동에서 정치적으로 동원되면서 불안해졌다. 1905년, 틸락(Lokmanya Tilak)과 라즈파트 라이(Lala Lajpat Rai)가 의회에서 지도자의 자리에 오르려고 시도하고 의회 자체가 칼리의 상징에 결집하면서 무슬림의 두려움이 커졌다.[13]

2. 1. 1. 1905년 벵골 분할

1905년 커존 경은 벵골 주를 무슬림 다수 지역인 동벵골과 힌두교 다수 지역인 벵골 주로 분할했다.[16] 이는 인도 민족주의 운동을 촉발하고, 힌두교-무슬림 간 갈등을 심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1906년에는 전인도 무슬림 연맹이 창설되어 무슬림의 정치적 권익을 대변하기 시작했다. 1911년 벵골 재통합은 무슬림들에게 불리한 것으로 여겨졌다.[16]

2. 1. 2. 제1차 세계 대전, 러크나우 협정: 1914–1918

제1차 세계 대전은 인도인들에게 더 큰 자치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1916년 러크나우 협정을 통해 인도 국민회의와 무슬림 연맹은 일시적인 협력 관계를 맺었다.[17] 오스만 제국의 붕괴와 칼리프 제도의 폐지는 인도 무슬림들의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인도의 국무장관 에드윈 새뮤얼 몬태규와 인도 총독 프리드릭 존 네이피어 더시거 3세 남작 첼름스퍼드 경은 1918년 7월 인도 전역을 순방한 후 보고서를 제출했다.[17] 1919년 12월, 몬태규-첼름스퍼드 개혁으로도 알려진 1919년 인도 정부법이 통과되었다.[17] 이 법은 주 의회와 제국 입법 평의회를 확대하고, 인도 정부의 "관료 다수당" 의존을 폐지했다.[17] 국방, 외교, 형법, 통신, 소득세 등은 인도 총독과 뉴델리 중앙 정부가 유지했지만, 공중 보건, 교육, 지방세, 지방 자치 등은 주로 이관되었다.[17] 주에서는 교육, 농업, 인프라 개발, 지방 자치 등은 인도 장관과 입법부의 영역이 되었고, 관개, 지방세, 경찰, 교도소, 언론 통제 등은 영국 주지사의 관할권에 남았다.[17]

더 많은 인도인들이 선거권을 얻었지만, 국가 차원의 투표권을 가진 사람들은 전체 성인 남성 인구의 10%에 불과했다.[17] 주 입법부에서 영국은 협력적인 농촌 후보들에게 더 많은 의석을 할당했다.[17] 비브라만, 토지 소유자, 사업가, 대학 졸업생을 위한 의석이 예약되었다. 무슬림, 시크교도, 인도 기독교인, 앵글로 인도인, 거주 유럽인을 위한 의석도 예약되었다.[17] 몬태규-첼름스퍼드 개혁은 인도인들에게 입법권을 행사할 기회를 제공했지만, 제한적인 유권자 수, 소규모 예산, 영국의 통제 수단으로 여겨지는 의석 할당 등에 의해 제한되었다.[17]

2. 1. 3. 몬태규-첼름스퍼드 개혁: 1919

(주어진 원본 소스에 1919년 몬태규-첼름스퍼드 개혁에 대한 내용이 없으므로, 출력할 내용이 없음)

2. 1. 4. 두 국가 이론의 등장: 1920년대

1933년, 차우드리 라흐마트 알리는 '파키스탄'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지금 아니면 영원히''라는 소책자를 발표했다. '파키스탄'은 "순수한 땅"을 뜻하며, 펀자브, 북서부 국경 주(아프가니스탄), 카슈미르, 신드, 발루치스탄을 포함했다.[234] 그러나 이 소책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고, 무슬림 대표단은 파키스탄이라는 생각을 "허황되고 비현실적"이라고 일축했다.[234]

1932년, 영국 총리 램지 맥도널드는 불가촉천민에게 별도의 대표를 허용하는 결정을 내렸고, 무슬림 연맹은 이를 지지했다. 마하트마 간디는 이에 반대하여 단식하였고, B. R. 암베드카르는 결국 물러섰다.[45]

2년 후, ''1935년 인도 정부법''은 주 자치를 도입하고 유권자 수를 3천 5백만 명으로 늘렸다. 치안 문제가 인도인이 이끄는 주 정부로 이관되면서 힌두 지배에 대한 무슬림의 불안감이 커졌다.[234] 1937년 인도 주 선거에서 무슬림 연맹은 무슬림 소수 지역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으나, 펀자브와 벵갈에서는 지역 정당에 밀렸다. 반면 인도 국민회의는 11개 주 중 7개 주에서 정부를 구성할 수 있을 정도로 압승을 거두었다. 인도 국민회의는 연맹과 권력 공유를 제안했으나 연맹이 거부하면서 무슬림 대중은 인도 국민회의로부터 더욱 소외되었다. 통합주 행정부의 소 보호와 힌디어 사용 정책은 무슬림 엘리트들을 더욱 소외시켰다.[234]

무슬림 연맹은 인도 국민회의 통치하의 무슬림 상황을 조사했고, 그 결과는 힌두 지배에 대한 무슬림 대중의 공포심을 증폭시켰다. 독립 인도에서 무슬림이 불공정한 대우를 받을 것이라는 견해가 확산되었다.[234]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탈식민화 흐름이 거세지면서 영국령 인도 제국의 해체가 불가피해졌다. 그러나 인도 내 힌두교도와 무슬림의 대립은 심화되었고, 무함마드 알리 진나를 지도자로 하는 전인도 무슬림 연맹1940년 라호르 결의(Lahore Resolution)에서 '''이민족론'''(Two-Nation Theory)을 주장하며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의 분리를 강력히 주장했다.[233][234]

2. 1. 5. 무슬림의 고향, 지방 선거: 1930–1938

1930년대 초, 차우드리 라흐마트 알리는 케임브리지에서 발행된 팸플릿 "지금 아니면 영원히(Now or Never)"에서 인도 아대륙 북서부의 무슬림 다수 지역을 지칭하는 '파키스탄'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며 무슬림 국가 건설을 주장했다.[46] 1935년 인도 정부법은 주 자치를 도입하고 인도 유권자 수를 늘렸지만, 무슬림들은 힌두교 지배에 대한 불안감을 느꼈다.

1937년 지방 선거에서 무슬림 연맹은 무슬림 소수 지역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지만, 펀자브벵골과 같은 무슬림 다수 지역에서는 지역 정당에 밀렸다.[46] 제2차 세계 대전 발발과 함께, 린리스고 경 인도 총독은 인도 지도자들과 상의 없이 인도를 대신하여 전쟁을 선포했고, 이에 항의하여 인도 국민회의(Congress)의 주 정부 장관들이 사퇴했다. 반면, 무슬림 연맹은 인도 국민회의의 지배에서 벗어나는 것을 기념하는 "해방일" 행사를 조직하고 전쟁에서 영국을 지지했다. 1940년 라호르에서 열린 무슬림 연맹 회의에서 무함마드 알리 진나는 이슬람과 힌두교의 분리론을 주장하는 연설을 했고, "라호르 결의안"을 통과시켜 무슬림 다수 지역을 묶어 독립 국가를 구성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2. 2. 제2차 세계 대전 중 및 이후 (1939–1947)

1939년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인도 총독 린리스고 백작은 인도 지도자들과 상의 없이 인도를 대신하여 전쟁을 선포했다.[47] 1940년 8월, 린리스고 백작은 인도에 전쟁 후 자치령 지위를 부여할 것을 제안하면서, 힌두교 지배에 대한 무슬림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미래 헌법이 소수자들의 의견을 고려할 것이라는 약속을 함께 제시했다.[47] 그러나 국민회의무슬림 연맹 모두 이 제안에 만족하지 않고 9월에 거부했으며, 국민회의는 다시 항명 운동을 시작했다.[48]

1940년 3월, 무슬림 연맹라호르 결의(Lahore Resolution)를 통해 무슬림 다수 지역의 독립 국가 건설을 요구했다.[234]

1942년 3월, 싱가포르 함락 후 일본군이 말레이 반도를 빠르게 진격하고 미국이 인도의 독립을 지지함에 따라, 당시 영국 수상이었던 윈스턴 처칠은 스태퍼드 크립스 경(Sir Stafford Cripps)을 파견하여 전쟁 종전 후 인도에 자치령 지위를 부여하는 제안을 했다. 이는 전쟁 노력에 대한 국민회의의 지지를 얻기 위한 것이었으나, 무슬림 연맹은 이 조항이 파키스탄 원칙을 충족하기에 불충분하다고 보고 제안을 거부했다.[49]

2. 2. 1. 8월 제안, 크립스 사절단: 1940–1942

제2차 세계 대전의 결과, 영국은 승리했지만 쇠약해져 초강대국의 지위에서 추락할 것이 확실해졌고, 탈식민화의 흐름이 거세짐에 따라 최대의 식민지였던 영국령 인도 제국의 해체는 불가피해졌다.

인도와 그 주변 영국 식민지에서의 종교적 다수파 분포. 분홍색은 힌두교, 녹색은 이슬람교, 영국령 버마를 중심으로 한 노란색은 불교.


하지만 인도에서는 다수파인 힌두교도와 소수파인 무슬림의 대립이 심화되고 있었다. 특히 무함마드 알리 진나를 지도자로 하는 전인도 무슬림 연맹1940년 라호르 결의(Lahore Resolution)에서 "'''이민족론'''"[233](Two-Nation Theory)을 주장하며,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의 분리를 강력히 주장했다.[234]

마운트배튼 총독(왼쪽)과 간디(가운데)


마하트마 간디는 이러한 분리 움직임에 강력히 반대하며 통일 인도의 실현을 주장했고, 인도 국민회의정교분리·세속주의의 입장에서 종교에 따른 분리에 신중했으며, 인도 공산당과 힌두 민족주의자들도 각자의 반응을 보였지만, 분리의 기세는 멈추지 않았다.

2. 2. 2. 인도를 떠나라 결의안: 1942년 8월

제2차 세계 대전 결과, 영국은 승리했지만 쇠약해져 초강대국 지위에서 추락하는 것이 확실해졌고, 탈식민화 흐름이 거세짐에 따라 최대 식민지였던 영국령 인도 제국의 해체는 불가피해졌다.

하지만 인도에서는 다수파인 힌두교도와 소수파인 무슬림의 대립이 심화되고 있었다. 특히 무함마드 알리 진나를 지도자로 하는 전인도 무슬림 연맹1940년 라호르 결의(Lahore Resolution)에서 "'''이민족론'''"[233](Two-Nation Theory)을 주장하며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의 분리를 강력히 주장했다.[234]

마하트마 간디는 이러한 분리 움직임에 강력히 반대하며 통일 인도 실현을 주장했고, 인도 국민회의정교분리·세속주의 입장에서 종교에 따른 분리에 신중했으며, 인도 공산당과 힌두 민족주의자들도 각자의 반응을 보였지만, 분리 기세는 멈추지 않았다.

2. 2. 3. 영국 노동당의 승리, 식민지 해방 결정: 1945

1945년 영국 총선에서 노동당이 승리하면서 클레멘트 애틀리가 이끄는 정부가 수립되었다. 스태퍼드 크립스와 프레더릭 페식로렌스 제1남작이 내각에 합류했는데, 이들을 포함한 새 정부의 많은 인물들은 오랫동안 인도의 식민지 해방을 지지해 왔다.[52]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영국 정부의 재무부는 고갈되었고, 영국 국민들은 비용이 많이 드는 먼 곳의 개입에 열의를 보이지 않았다.[52] 애틀리는 회고록에서, 전쟁 후 아시아의 식민 지배가 민족주의 운동과 미국의 반대에 직면할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에 자치 과정을 신속하게 재개했다고 적었다.[53]

영국 정부는 인도의 영국 식민 통치(British Raj) 종식을 결정했고, 1947년 초에는 1948년 6월 이전에 권력 이양을 할 의도를 발표했다.[52] 전쟁에서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영국은 엄청난 고통을 겪었고, 불안한 인도를 제압하는 데 필요한 인력이나 경제적 자원이 부족했다.

2. 2. 4. 인도 지방 선거: 1946

1946년 인도 내각 사절단

1937년 선거에서의 성과를 회복한 후, 무슬림 연맹은 자신들과 무함마드 알리 진나만이 인도 무슬림들을 대표한다는 주장을 관철할 수 있게 되었다.[60] 진나는 이 투표 결과를 별도의 고향에 대한 대중적 요구로 즉시 해석했다.[61] 인도 국민회의는 NWFP에 각료를 구성했고, 펀자브 주는 인도국민회의, 시크교도, 연합주의자들의 연립 내각이 장악하면서 긴장이 고조되었지만, 무슬림 연맹은 신드와 벵골 두 주를 제외하고는 각료를 구성할 수 없었다.[62]

2. 2. 5. 내각 사절단: 1946년 7월

1946년 7월 내각 사절단 임무가 실패한 후, 무함마드 알리 진나는 봄베이(현재의 뭄바이) 자택에서 기자 회견을 열었다. 그는 무슬림 연맹이 "투쟁을 시작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선언하고 "계획을 세웠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 무슬림들에게 별도의 파키스탄이 허용되지 않으면 "직접 행동"을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는 요청에 진나는 "국민회의에 가서 그들의 계획을 물어보시오. 그들이 당신을 신뢰하는 경우 저도 당신을 신뢰할 것입니다. 왜 나 혼자만 손을 모으고 기다리기를 기대하십니까? 저도 문제를 일으킬 것입니다."라고 응수했다.[68]

다음 날, 진나는 1946년 8월 16일을 "직접 행동의 날"로 선포하고 국민회의에 "우리는 전쟁을 원하지 않습니다. 만약 당신이 전쟁을 원한다면 우리는 주저 없이 당신의 제안을 받아들일 것입니다. 우리는 분할된 인도 또는 파괴된 인도를 가질 것입니다."라고 경고했다.[68]

2. 2. 6. 직접 행동의 날: 1946년 8월

무함마드 알리 진나를 지도자로 하는 전인도 무슬림 연맹1940년 라호르 결의(Lahore Resolution)에서 "'''이민족론'''"[233](Two-Nation Theory)을 주장하며,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의 분리를 강력히 주장했다.[234] 마하트마 간디는 이러한 분리 움직임에 강력히 반대하며 통일 인도의 실현을 주장했고, 인도 국민회의정교분리·세속주의의 입장에서 종교에 따른 분리에 신중했으며, 인도 공산당과 힌두 민족주의자들도 각자의 반응을 보였지만, 분리의 기세는 멈추지 않았다.

2. 2. 7. 분할 계획: 1946–1947

1947년 6월 3일, 마운트배튼 경이 공식적으로 분할 계획을 제안했을 때, 파텔은 이를 승인하고 네루와 다른 인도 국민회의 지도자들에게 이 제안을 수용하도록 설득했다. 간디는 분할 제안에 대해 깊은 고뇌를 느꼈는데, 파텔은 그와 비공개 회의를 통해 인도국민회의-무슬림연맹 연립 정부의 실질적인 불가능성, 증가하는 폭력, 그리고 내전의 위협에 대해 논의했다.[76] 이 제안에 대한 투표를 위해 소집된 전인도국민회의 회의에서 파텔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 나는 [무슬림 다수 지역]의 형제들의 두려움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인도의 분할을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나의 마음도 무겁습니다. 그러나 선택지는 하나의 분할과 여러 개의 분할 사이에 있습니다. 우리는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감정과 감상에 굴복해서는 안 됩니다. 중앙집행위원회는 두려움 때문에 행동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한 가지를 두려워합니다. 지난 수년간 우리의 모든 노력과 힘든 작업이 헛수고가 되거나 결실을 맺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9개월간의 재임 기간 동안 내각 사절단 계획의 가정된 장점에 대해 완전히 환멸을 느꼈습니다. 몇몇 명예로운 예외를 제외하고, 최고위직에서부터 차프라시(잡역부 또는 하인)에 이르기까지 무슬림 관리들은 무슬림연맹을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사절단 계획에서 무슬림연맹에 주어진 종파적 거부권은 인도의 발전을 모든 단계에서 막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좋아하든 싫어하든, 펀자브와 벵골에는 이미 사실상 파키스탄이 존재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저는 무슬림연맹을 더 책임감 있게 만들 수 있는 법적 파키스탄을 선호합니다. 독립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인도의 75~80%를 가지고 있으며, 우리의 천재성으로 강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무슬림연맹은 나머지 국가를 개발할 수 있습니다.

간디의 거부[77]와 인도국민회의의 계획 승인 후, 파텔, 라젠드라 프라사드, C. 라자고팔라차리는 분할 위원회에서 인도국민회의를 대표했고, 진나, 리아카트 알리 칸, 압둘 랍 니시타르는 무슬림연맹을 대표했다.

1946년 말, 제2차 세계 대전 직후 국고가 고갈된 애틀리 내각의 영국 노동당 정부는 1948년 6월 이전에 권력이 이양되는 것을 조건으로 인도에 대한 영국의 통치를 종식시키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증가하는 폭력의 잠재력에 대비하지 못한 영국군 때문에 새로운 총독 마운트배튼은 기한을 앞당겼고, 상호 합의된 독립 계획을 세울 시간은 6개월도 채 되지 않았다.

제2차 세계 대전의 결과, 영국은 승리했지만 쇠약해져 초강대국의 지위에서 추락할 것이 확실해졌고, 탈식민화의 흐름이 거세짐에 따라 최대의 식민지였던 영국령 인도 제국의 해체는 불가피해졌다.

인도에서는 다수파인 힌두교도와 소수파인 무슬림의 대립이 심화되고 있었다. 특히 무함마드 알리 진나를 지도자로 하는 전인도 무슬림 연맹1940년 라호르 결의(Lahore Resolution)에서 "'''이민족론'''"[233](Two-Nation Theory)을 주장하며,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의 분리를 강력히 주장했다.[234]

마하트마 간디는 이러한 분리 움직임에 강력히 반대하며 통일 인도의 실현을 주장했고, 인도 국민회의정교분리·세속주의의 입장에서 종교에 따른 분리에 신중했으며, 인도 공산당과 힌두 민족주의자들도 각자의 반응을 보였지만, 분리의 기세는 멈추지 않았다.

영국은 처음에는 힌두교도가 많은 지역을 힌두스탄, 이슬람교도가 많은 지역을 파키스탄으로 하고 각 토후국을 남겨 이 세 지역으로 「인도 연방」을 구성하는 독립안을 구상했지만, 합의를 얻지 못했다.

결국 영국 마지막 인도 총독 루이스 마운트배튼은 인도를 하나로 하는 계획을 포기하고, 1947년 6월 4일, 영국령 인도 제국을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분할'''하는 독립( 인도 고등문관, 인도 군, 인도 철도의 분할 포함)을 같은 해 8월 15일에 시행하는 안을 선언했다.

또한, 독립 후 통치의 잠정적인 틀을 영국 의회가 제정한 1935년 인도 통치법에 따라 행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7월 18일에 시행된 Indian Independence Act 1947영어 (→인도 헌법#1947년 인도 독립법)은 영국령 인도를 인도와 파키스탄의 두 개의 새로운 국가로 분할하고, 각국의 헌법(인도 헌법 및 파키스탄 헌법(en))이 시행될 때까지 영국 연방의 자치령(도미니언. 캐나다오스트레일리아와 같은 지위로, 국제법상의 독립국)으로 하는 것을 규정했다.

2. 2. 8. 인도 독립법 제안

1947년 6월, 국민회의 측의 자와할랄 네루, 발라브바이 파텔, J. B. 크리팔라니와 무슬림 연맹 측의 무함마드 알리 진나, 리아카트 알리 칸, 압둘랍 니스타르, 그리고 시크교도 대표 마스터 타라 싱 등 주요 지도자들은 마하트마 간디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인도의 분할에 동의했다. 주로 힌두교도와 시크교도 지역은 인도에, 주로 무슬림 지역은 파키스탄에 할당되었으며, 펀자브와 벵골의 무슬림 다수 지역 분할도 포함되었다. 분할선인 래드클리프 분할선이 발표되면서 종교 간 폭력이 발생했다.[3]

영국은 당초 힌두교도가 많은 지역을 힌두스탄, 이슬람교도가 많은 지역을 파키스탄으로 하고 각 토후국을 남겨 이 세 지역으로 인도 연방을 구성하는 독립안을 구상했으나, 합의를 얻지 못했다.

루이스 마운트배튼 인도 총독은 1947년 6월 4일, 영국령 인도 제국을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분할하고, 인도 고등문관, 인도군, 인도 철도를 분할하는 것을 포함하여 같은 해 8월 15일에 독립을 시행하는 안을 발표했다.

또한, 독립 후 통치는 영국 의회가 제정한 1935년 인도 통치법에 따라 잠정적으로 시행하도록 했다. 7월 18일에 시행된 Indian Independence Act 1947영어 (→인도 헌법#1947년 인도 독립법)은 영국령 인도를 인도와 파키스탄의 두 개의 새로운 국가로 분할하고, 각국의 헌법(인도 헌법 및 파키스탄 헌법)이 시행될 때까지 영국 연방의 자치령(도미니언)으로 하는 것을 규정했다.

2. 2. 9. 래드클리프 라인

1947년 8월, 영국 수도 런던의 법정 변호사(바리스터)였던 시릴 래드클리프(Cyril Radcliffe)에게 지리적 분할 작업이 맡겨졌다.[235] 이 때문에 분할선은 래드클리프 라인(Radcliffe Line)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 분할선은 독립 당일까지 공표되지 않았다.

이슬람교도가 다수를 차지하는 지역이 영국령 인도 제국 동서에 걸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서쪽의 펀자브 지방과 동쪽의 벵골 지방은 각각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분할되었다. 펀자브 지방은 펀자브주 (파키스탄)펀자브주 (인도)(후에 여기에서 다시 하리아나주히마찰프라데시주, 찬디가르가 분할됨)로, 벵골 지방은 동파키스탄서벵골주로 분할되었다.

벵골에서는 1905년벵골 분할령과 유사한 형태로 분리가 이루어졌지만(en), 펀자브에서는 분할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혼란은 더욱 커졌다.

펀자브에서 철도 차량에서 넘쳐나는 난민


철도 차량에 가득 탄 난민

2. 2. 10. 독립: 1947년 8월

1947년 8월 14일, 무함마드 알리 진나카라치에서 초대 총독으로 취임하면서 새로운 파키스탄 지배령이 탄생했다.[78] 그 다음 날인 1947년 8월 15일, 인도 지배령이 독립국이 되었고, 뉴델리에서 공식 행사가 열렸으며, 자와할랄 네루가 총리직을 맡았다. 루이스 마운트배튼은 10개월 동안 뉴델리에 머물면서 1948년 6월까지 독립 인도의 초대 총독으로 재직했다.[78]

독립 기념일의 델리 붉은 성

3. 1947년 지리적 분할

1947년 인도파키스탄의 지리적 분할은 주로 펀자브벵골 지역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펀자브는 인더스 강 동쪽의 젤룸강, 체납강, 라비강, 비아스강, 술례지강의 다섯 강 사이에 있는 지역으로, 강 사이의 도압(두 강 사이의 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1947년경 펀자브 지역 지도

  • 싱드-사가르 도압 (인더스 강과 젤룸 강 사이)
  • 제크 도압 (젤룸 강과 체납 강 사이)
  • 레크나 도압 (체납 강과 라비 강 사이)
  • 바리 도압 (라비 강과 비아스 강 사이)
  • 비스트 도압 (비아스 강과 술례지 강 사이)


1947년 초, 펀자브 경계위원회 심의에 앞서 주요 분쟁 지역은 바리 도압과 비스트 도압에 있는 것으로 보였다. 인도국민회의와 시크교도들은 레크나 도압의 일부 지역을 주장했다. 바리 도압에서는 구르다스푸르 지구, 암리트사르 지구, 라호르 지구, 몽고메리 지구가 모두 분쟁 지역이었다.[86] 암리트사르 지구(무슬림 46.5%)를 제외한 모든 지구는 무슬림이 다수였지만, 구르다스푸르 지구의 경우 무슬림 다수는 51.1%로 근소했다.

경계위원회가 공식적인 심리를 시작하기 전에 동펀자브와 서펀자브 지역을 위한 정부가 수립되었다. 펀자브와 벵골 모두에서 경계위원회는 무슬림 판사 두 명과 비무슬림 판사 두 명으로 구성되었으며, 사이릴 래드클리프 경이 공동 의장을 맡았다.[86] 펀자브 위원회의 임무는 "무슬림과 비무슬림의 인접한 다수 지역을 확인하는 것을 기반으로 펀자브 두 지역의 경계를 구획하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다른 요소들도 고려했다. 각 측(무슬림과 인도국민회의/시크교도)은 협상의 자유 없이 변호사를 통해 주장을 제기했다. 판사들도 타협할 권한이 없었고, 모든 주요 문제에 대해 "두 명씩 나뉘어 사이릴 래드클리프 경에게 실제 결정을 내리는 불쾌한 임무를 남겼다."[86]

3. 1. 마운트배튼 계획

1947년 6월 3일, 루이스 마운트배튼 경은 기자회견을 통해 독립일을 1947년 8월 14일로 발표하고, "마운트배튼 계획" 또는 "6월 3일 계획"으로 알려진 영국 인도의 두 새로운 자치령으로의 분할을 개괄했다. 이 계획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79]

  • 펀자브와 벵골의 시크교도, 힌두교도, 무슬림 의회는 분할 투표를 실시한다. 어느 한 집단이라도 단순 다수결로 분할을 원하면 해당 주는 분할된다.
  • 신드발루치스탄은 자체적으로 결정한다.
  • 북서부 국경 지방과 아삼의 실렛 지구는 국민투표를 통해 결정한다.
  • 벵골의 독립은 배제된다.
  • 분할의 경우 국경 위원회가 설립된다.


인도 정치 지도자들은 6월 2일에 이 계획을 수락했다. 이 계획은 영국의 영토가 아닌 토후국의 문제는 다루지 않았지만, 6월 3일 마운트배튼은 독립 유지를 반대하고 두 새로운 자치령 중 하나에 합류할 것을 촉구했다.[80]

전인도 무슬림 연맹의 별도 국가 요구는 받아들여졌다. 인도 국민회의의 통일성 입장도 고려되었다. 마운트배튼의 방식은 인도를 분할하면서 최대한의 통일성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아불 칼람 아자드는 폭력적인 폭동 가능성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고, 마운트배튼은 다음과 같이 답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완벽한 확신을 드리겠습니다. 유혈 사태와 폭동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군인이지 민간인이 아닙니다. 일단 분할이 원칙적으로 받아들여지면, 전국 어디에서도 종교적 분쟁이 없도록 명령을 내리겠습니다. 만약 최소한의 소요가 발생하더라도, 문제의 싹을 잘라내기 위해 가장 엄격한 조치를 취할 것입니다.



자그모한은 이것과 그 이후의 상황이 "정부 기구의 명백한 실패"를 보여준다고 말했다.[81]

1947년 6월 3일, 분할 계획은 인도 국민회의 집행위원회에 의해 승인되었다.[82] 펀자브에서는 폭동은 없었지만 종교적 긴장이 있었고, 간디네루와 파텔에 의해 고립되어 '마운 브라트'(침묵의 날)를 지켰다. 마운트배튼은 간디를 방문하여 분할에 반대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고, 간디는 "제가 당신에게 반대한 적이 있습니까?"라고 답장을 썼다.[83]

3. 2. 펀자브 경계 위원회



펀자브 경계 위원회는 무슬림과 비무슬림의 인접 다수 지역을 확인하여 펀자브를 분할하는 임무를 맡았다. 펀자브는 인더스강 동쪽의 다섯 개 강, 즉 젤룸강, 체납강, 라비강, 비아스강, 그리고 술례지강 사이에 있는 지역으로, 강 사이에 있는 도압(두 개의 강 사이에 있는 땅)으로 이루어져 있다(오른쪽 지도 참조).

  • 싱드-사가르 도압(인더스강과 젤룸강 사이)
  • 제크 도압(젤룸강과 체납강 사이)
  • 레크나 도압(체납강과 라비강 사이)
  • 바리 도압(라비강과 비아스강 사이)
  • 비스트 도압(비아스강과 술례지강 사이)


1947년 초, 펀자브 경계위원회 심의에 앞선 몇 달 동안 주요 분쟁 지역은 바리 도압과 비스트 도압에 있는 것으로 보였다. 레크나 도압의 일부 지역은 인도국민회의와 시크교도들이 주장했다. 바리 도압에서는 구르다스푸르 지구, 암리트사르 지구, 라호르 지구, 몽고메리 지구가 모두 분쟁 지역이었다.[86] 암리트사르 지구(무슬림 46.5%)를 제외한 모든 지구는 무슬림이 다수였지만, 구르다스푸르 지구의 경우 무슬림 다수는 51.1%로 근소했다.

경계위원회가 공식적인 심리를 시작하기 전에 동펀자브와 서펀자브 지역을 위한 정부가 수립되었다. 그 지역은 단순한 지구 다수결을 기반으로 한 "가상 분할"에 따라 잠정적으로 분할되었다. 펀자브와 벵골 모두에서 경계위원회는 무슬림 판사 두 명과 비무슬림 판사 두 명으로 구성되었으며, 사이릴 래드클리프 경이 공동 의장을 맡았다.[86] 펀자브 위원회의 임무는 일반적으로 "무슬림과 비무슬림의 인접한 다수 지역을 확인하는 것을 기반으로 펀자브 두 지역의 경계를 구획하는 것"으로 표현되었다. 이 과정에서 다른 요소들도 고려할 것이다. 각 측(무슬림과 인도국민회의/시크교도)은 협상의 자유 없이 변호사를 통해 주장을 제기했다. 판사들도 타협할 권한이 없었고, 모든 주요 문제에 대해 "두 명씩 나뉘어 사이릴 래드클리프 경에게 실제 결정을 내리는 불쾌한 임무를 남겼다."[86]

4. 독립, 이주 및 강제 이주

분할 직후 몇 달 동안, 인도와 파키스탄 양국 간에 대규모 인구 이동이 발생했다. 분할로 인해 인구 이동이 필요하다는 개념은 전혀 없었지만, 펀자브주에서는 종교 간 폭력으로 인해 예외적으로 인구 이동이 조직되었다. 1947년 당시 미분할 인도의 인구는 약 3억 9천만 명이었다. 분할 후 인도에는 약 3억 3천만 명, 서파키스탄에는 3천만 명, 동파키스탄(현재 방글라데시)에는 3천만 명이 있었다.[89]

경계가 확립되자 약 1,450만 명이 종교적 다수파의 상대적 안전을 찾아 국경을 넘었다. 1951년 파키스탄 인구 조사에 따르면 파키스탄 내 이주민 수는 7,226,600명으로, 모두 인도에서 파키스탄으로 들어온 무슬림으로 추정된다. 1951년 인도 인구 조사에서는 7,295,870명의 이주민이 집계되었는데, 이들은 모두 분할 직후 파키스탄에서 인도로 이동한 힌두교도와 시크교도로 추정된다.[90]

파키스탄행 열차에 경호대가 경례를 하고 있다. 뉴델리 기차역, 1947년


인도로 향하는 소달구지 행렬에 앉아 있는 시크교도들. 1947년.


파키스탄으로 향하는 시골 지역 난민 열차에서 두 명의 무슬림 남성이 임시로 만든 '돌리'(doli) 또는 가마에 노인 여성을 태우고 있다. 1947년.


펀자브주(파키스탄)로 향하는 난민 열차


이 과정에서 힌두교도 지역의 이슬람교도들은 이슬람교도 지역으로, 이슬람교도 지역의 힌두교도와 펀자브의 시크교도들은 힌두교도 지역으로 강제 이동하면서 난민이 되었다. 이슬람법에는 이교도의 지배하에 있는 이슬람교도가 이슬람교도가 지배하는 영역으로 이주해야 한다는 사상이 있는데, 이를 바탕으로 이슬람교도들 사이에서 "무하지룬 운동"이라고 불리는 이주 운동이 전개되었다.

인도 정부 조사에 따르면 이주자 수는 파키스탄에서 인도로 약 840만 명, 인도에서 동서 파키스탄으로 약 715만 명이었다.[232] 단기간의 대량 인구 이동으로 인해 발생한 대혼란 때문에, 특히 펀자브 지방에서는 양측 종교도 사이에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충돌과 폭동, 학살이 발생하고, 더욱 보복의 연쇄가 각지로 번졌다. 난민 무리가 스쳐 지날 때 갑자기 살육이 시작되는 일도 있었다. 한 설에 따르면 사망자 수는 100만 명에 달했다고 한다.[232] 또한, 여성에 대한 강간은 수만 건 또는 수십만 건 발생했다고도 한다. 이때 발생한 양측의 불신과 증오는 인도-파키스탄 관계에 이후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한편 콜카타에서는 간디의 노력에 의해 학살이 억제되었다.

5. 분할의 영향을 받은 지역

인도의 분할로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지역은 펀자브 지방, 벵골 지방, 신드, 델리 등이었다. 이 지역들에서는 새롭게 만들어진 인도-파키스탄 국경 양쪽에서 대규모 폭력과 학살이 발생했다.[91] 특히 펀자브에서는 양쪽 종교 집단 사이에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충돌, 폭동, 학살이 발생하고, 보복의 연쇄가 각지로 번졌다.

벵골 지방은 동파키스탄서벵골주로, 펀자브 지방은 펀자브주 (파키스탄)펀자브주 (인도)로 분할되었다. 펀자브의 경우, 이후 하리아나주, 히마찰프라데시주, 찬디가르가 추가로 분할되었다.

폭동을 조정하는 간디


펀자브와 벵골, 두 지역에서는 힌두교도 지역의 이슬람교도들은 이슬람교도 지역으로, 반대로 이슬람교도 지역의 힌두교도와 펀자브의 시크교도들은 힌두교도 지역으로 각각 강제 이동 및 유입되면서 난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인도 정부 조사에 따르면, 파키스탄에서 인도로 약 840만 명, 인도에서 동서 파키스탄으로 약 715만 명이 이주했다.[232] 사망자 수에 대한 추산은 20만 명에서 200만 명까지 다양하지만, 대부분의 학자들은 분할 폭력으로 약 100만 명이 사망했다는 데 동의한다.[99]

이 과정에서 발생한 양측의 불신과 증오는 인도-파키스탄 관계에 이후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5. 1. 펀자브

인도 분할 당시 암발라 역의 난민 특별 열차


인도의 분할로 과거 영국령 펀자브 주는 인도 지배령과 파키스탄 지배령으로 나뉘었다. 무슬림이 다수였던 서부 지역은 파키스탄의 펀자브 주가 되었고, 힌두교도와 시크교도가 다수였던 동부 지역은 인도의 동펀자브 주(이후 펀자브, 하리아나, 히마찰프라데시로 분리됨)가 되었다. 서부에는 많은 힌두교도와 시크교도가, 동부에는 많은 무슬림이 살고 있었기 때문에, 분할은 이들을 난민으로 만들었고 종교 간 폭력을 초래했다. 펀자브에서 발생한 폭력은 보복적 대량 학살로 묘사되기도 한다.[103] 분할 당시 펀자브 전역의 총 이주민 수는 1,200만 명으로 추산된다.[104] 약 650만 명의 무슬림이 서펀자브로, 470만 명의 힌두교도와 시크교도가 동펀자브로 이주했다.

동펀자브에서는 말레르코틀라와 누를 제외하고 무슬림이 거의 생존하지 못했고, 서펀자브에서는 라힘 야르 칸과 바하왈푸르를 제외하고 힌두교도나 시크교도가 거의 생존하지 못했다.[105]

로렌스 제임스에 따르면, 서펀자브 주지사였던 프랜시스 무디 경은 그의 주에 들어오려던 50만 명의 무슬림이 사망했다고 추산했고, 카라치의 영국 고등판무관은 총 사망자 수를 80만 명으로 추산했다.[156]

이 시기 시크교 지도자 타라 싱은 무슬림 살해를 옹호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1947년 3월 3일, 라호르에서 싱은 약 500명의 시크교도들과 함께 연단에서 "파키스탄의 멸망"을 선포했다.[106] 정치학자 이쉬티야크 아흐메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107][108][109][110]

> 3월 3일, 급진적인 시크교 지도자인 마스터 타라 싱은 펀자브 의회 밖에서 그의 키르판(검)을 휘두르며 파키스탄이라는 개념의 파괴를 요구했고, 이는 주로 시크교도들뿐만 아니라 힌두교도들에 대한 무슬림들의 폭력적인 반응을 북부 펀자브의 무슬림 다수 지역에서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러나 그해 말까지 동펀자브에서 살해된 무슬림 수는 서펀자브에서 살해된 힌두교도와 시크교도 수를 합친 것보다 많았습니다.

네루는 8월 22일 간디에게 보낸 편지에서, 당시까지 동펀자브에서 살해된 무슬림 수가 서펀자브에서 살해된 힌두교도와 시크교도 수의 두 배에 달한다고 언급했다.[111]

펀자브 주의 종교 집단 (1921–1941)
종교
집단
1921[112]1931[113]1941[114]
인구비율(%)인구비율(%)인구비율(%)
이슬람교
12,813,38351.0514,929,89652.4018,259,74453.22
힌두교
8,799,65135.069,018,50931.6610,336,54930.13
시크교
3,107,29612.384,071,62414.295,116,18514.91
기독교
332,9391.33419,3531.47512,4661.49
자이나교
41,3210.1643,1400.1545,4750.13
불교
5,9120.027,7530.038540.002
조로아스터교
5260.0025690.0024,3590.01
유대교
190.0001130.00005390.0001
기타130.00050034,1900.10
총 인구25,101,06010028,490,85710034,309,861100



서펀자브의 종교 (1921–1941)
종교
집단
1921[112]1931[113]1941[114]
인구비율(%)인구비율(%)인구비율(%)
이슬람교 --8,975,28875.5110,570,02975.2813,022,16075.06
힌두교 1,797,14115.111,957,87813.942,373,46613.68
시크교 863,0917.261,180,7898.411,530,1128.82
기독교 --247,0302.08324,7302.31395,3112.28
자이나교 5,9300.056,9210.059,5200.05
조로아스터교 3090.0034130.0033120.002
불교 1720.001320.0002870.0005
유대교 160.000160.0000470.00004
기타80.00070019,1280.11
총 인구11,888,98510014,040,79810017,350,103100
영역은 현대의 파키스탄 펀자브 주와 이슬라마바드 수도권을 포함합니다.



동펀자브의 종교 (1921–1941)
종교
집단
1921[112]1931[113]1941[114]
인구비율(%)인구비율(%)인구비율(%)
힌두교 7,002,51053.007,060,63148.867,963,08346.95
이슬람교 --3,838,09529.054,359,86730.175,237,58430.88
시크교 2,244,20516.992,890,83520.013,586,07321.14
기독교 --85,9090.6594,6230.66117,1550.69
자이나교 35,3910.2736,2190.2535,9550.21
불교 5,7400.047,7210.057670.005
조로아스터교 2170.0021560.0014,0470.02
유대교 30.0000270.00005320.0002
기타50.000040015,0650.09
총 인구13,212,07510014,450,05910016,959,758100


5. 2. 벵골

벵골 주는 인도 연방에 할당된 서벵골과 파키스탄 연방에 할당된 동벵골의 두 지역으로 분할되었다. 동벵골은 1955년에 동파키스탄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1971년 방글라데시 독립 전쟁 이후 방글라데시라는 독립 국가가 되었다.

갠지스강 우안에 위치한 무르시다바드와 말다 지역은 무슬림이 다수였음에도 불구하고 인도에 할당되었다. 갠지스 강 하구에 위치하고 무슬림이 다수인 지역들에 둘러싸인 힌두교도가 다수인 쿨나 지역과 가장 동쪽에 있는 치타공 구릉 지대는 파키스탄에 할당되었다.[115]

파키스탄에 할당된 동벵골 지역에 거주하던 수천 명의 힌두교도들이 공격을 받았고, 이러한 종교적 박해로 인해 수십만 명의 힌두교도들이 동벵골에서 인도로 피난을 가게 되었다. 힌두교 난민들의 콜카타 유입은 도시의 인구 통계에 영향을 미쳤다. 많은 무슬림들이 동파키스탄으로 떠났고, 난민 가족들은 그들의 집과 재산을 점유했다.

분할 당시 벵골 전역의 총 이주민 수는 330만 명으로 추산된다. 260만 명의 힌두교도가 동파키스탄에서 인도로, 70만 명의 무슬림이 인도에서 동파키스탄(현재 방글라데시)으로 이동했다.

5. 3. 신드

1947년 말부터 신드에서는 반(反) 힌두교 폭동이 발생했다. 비록 펀자브와 벵골만큼 대규모 폭력 사태는 없었지만, 이로 인해 120만~140만 명의 힌두교도가 인도로 이주했다.[232]

5. 4. 구자라트

1948년 3월, 북구자라트의 고드라 마을에 신드 주 출신 힌두교 난민들이 도착하면서 폭동이 발생했고, 이로 인해 더 많은 무슬림들이 고드라에서 파키스탄으로 이주했다.[118]

5. 5. 델리

델리에서는 수만 명의 무슬림이 학살당하고 난민 캠프로 쫓겨났다. 반면 서펀자브와 북서 변경 지방 출신의 수십만 명의 힌두교도와 시크교도 난민이 도시로 피난했다. 이들은 델리에 거대한 빈민가를 형성하여 도시 빈곤층을 발생시켜 사회 불안정 요인이 되었다.[232]

5. 6. 번왕국

1947년 후마윤의 묘에 있는 무슬림 난민


파키스탄으로 이송될 때까지 기다리는 무슬림 난민들을 위한 거대한 캠프로 개조된 델리의 푸라나 킬라(옛 성채)에 있는 무슬림 군중. ''맨체스터 가디언'', 1947년 9월 27일.


알와르와 브라트푸르에서는 힌두교도와 무슬림 간의 유혈 충돌이 발생하여 수만 명의 무슬림이 학살당하고 강제 이주당했다. 잠무와 카슈미르에서는 잠무 지역에서 다수의 무슬림이 살해되고 서펀자브로 쫓겨났으며, 이후 파슈툰 부족 민병대와 파키스탄 군인들에 의해 힌두교도와 시크교도에 대한 학살이 이어졌다.[232]

두 지역에서는 힌두교도 지역의 이슬람교도는 이슬람교도 지역으로, 반대로 이슬람교도 지역의 힌두교도와 펀자브의 시크교도들은 힌두교도 지역으로 각각 강제 이동 및 유입에 따른 난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슬람법에는 이교도의 지배하에 있으며, 선교와 지하드에 의한 상황 타개가 당장 불가능한 경우, 이슬람교도가 지배하는 영역으로 이주해야 한다는 사상이 있다. 이 사상에 기초하여, 이슬람교도들 사이에서 "무하지룬 운동"이라고 불리는 이주 운동이 전개되었다.

인도 정부 조사에 따르면, 파키스탄에서 인도로 약 840만 명, 인도에서 동서 파키스탄으로 약 715만 명이 이주했다.[232] 단기간의 대량 인구 이동으로 인한 대혼란 때문에, 특히 펀자브 지방에서는 양쪽 종교도 사이에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충돌과 폭동, 학살이 발생하고, 보복의 연쇄가 각지로 번졌다. 땅에 남아 있던 상대방 종교도 마을에 대한 습격, 약탈, 학살은 물론, 난민 무리가 스쳐 지날 때 갑자기 살육이 시작되는 일도 있었다. 한 설에 따르면 사망자 수는 100만 명에 달했다고 한다.[232] 또한, 여성에 대한 강간은 수만 건 또는 수십만 건 발생했다고도 한다. 이때 발생한 양측의 불신과 증오는 인도-파키스탄 관계에 이후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한편 콜카타에서는 간디의 노력으로 학살이 억제되었다.

6. 난민 정착: 1947–1951

여러 토후국 통치자들이 공동체 폭력에 연루되거나 제때 막지 못했다. 일부 통치자들은 시크교 토후국 통치자들처럼 여름 동안 자국을 떠나 있기도 했다. 바하왈푸르파티알라에서는 통치자가 귀환한 이후 폭력이 현저히 감소했고, 통치자들은 결과적으로 청소에 반대했다. 바하왈푸르 나와브는 유럽에 머물다 10월 1일에 귀국하여 여행을 단축했다. 하산 수흐라워르디는 마하트마 간디에게 편지를 썼다.

진드와 카푸르탈라를 제외한 시크 주에서는 폭력이 지역 정부가 제공하는 물류를 통해 잘 조직되었다.[135] 파티알라와 파리드코트에서 마하라자들은 인도에서 무슬림을 제거하라는 마스터 타라 싱의 호소에 응했다. 파티알라 마하라자는 "펀자브 내전의 잿더미"에서 일어날 미래의 통합된 시크 주의 수장직을 제안받았다.[136] 파리드코트의 마하라자 하린더 싱은 대학살 이야기를 매우 흥미롭게 들었다고 전해지며, 학살의 "흥미로운 세부 사항"을 요구하기까지 했다고 한다.[137] 바라트푸르 주의 마하라자는 쿰바르와 무슬림 메오의 청소를 직접 목격했다. 브리젠드라 싱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 무슬림들에게 비난받자 "왜 나에게 와요? 진나에게 가요."라고 응수했다.[138]

알와르와 바하왈푸르에서는 공동체 감정이 정부의 상층부까지 확대되었고, 이들 주의 총리는 청소 계획 및 직접 감독에 관여했다고 한다. 반대로 비카네르에서는 조직이 훨씬 하위 수준에서 발생했다.[139]

인도의 분할 과정에서 발생한 난민들은 인도와 파키스탄 양국의 대도시에 빈민가를 형성하며 사회 불안정 요인이 되었다.

6. 1. 인도에서의 정착

서펀자브 출신 힌두교도와 시크교도 난민들은 델리에 정착했다. 동파키스탄에서 도망친 힌두교도들은 동인도, 중인도, 동북인도 전역에 정착했다. 인도로 피난한 힌두교도와 시크교도 난민들은 델리, 뭄바이, 콜카타에, 동·서 파키스탄으로 피난한 무슬림 난민들은 카라치, 라호르, 다카와 같은 양국의 대도시에서 거대한 빈민가를 형성하여 양국에 막대한 도시 빈곤층을 발생시켜 사회 불안정 요인이 되었다.[140][141][142]

6. 2. 파키스탄에서의 정착

동펀자브와 인근 라자스탄 주 출신 무슬림 난민 대부분은 서펀자브에 정착했다. 비하르, 서벵골, 오리사 출신 난민들은 주로 동파키스탄에 정착했다.

7. 분할 이후의 이주

분할 이후, 많은 인도 무슬림들이 파키스탄으로 이주했지만, 1970년대 이후 급격히 감소했다.[232] 많은 토후국들이 인도로 귀속되었으나, 니잠 왕국은 인도에 강제 병합되었고, 잠무 카슈미르 왕국의 귀속 문제를 둘러싸고 제1차 인도-파키스탄 전쟁이 발발했다.[153]

인도와 파키스탄 양국은 2020년대에도 원칙적으로 상호 국민에게 비자를 발급하지 않지만, 파키스탄 여행사를 통해 인도로 이주한 사람이나 그 자손의 고향 방문이 제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232]

7. 1. 파키스탄

인도 독립 이후에도 많은 인도 무슬림들이 파키스탄으로 계속 이주했다.[232] 1970년대 이후 인도 무슬림의 파키스탄 이주는 급격히 감소했다.[232] 파키스탄은 동서로 나뉜 영토를 갖게 되면서 국가로서 불안정한 상황을 맞게 되었고, 이는 결국 방글라데시 독립 전쟁과 제3차 인도-파키스탄 전쟁을 거쳐 동파키스탄이 방글라데시로 독립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인도와 파키스탄의 대립은 양국의 핵무장으로 확대되었으며, 인도를 공통의 적대국으로 하는 중국과 파키스탄의 관계를 심화시켰다.[236] 또한, 양국의 대립은 인도가 세속주의인 것에 비해 파키스탄이 이슬람교국교로 하고 있다는, 양국 국가 이념의 근본적인 차이에서 기인한다는 견해도 있다.[236]

7. 2. 인도

많은 토후국들이 인도 측 부총리 발라브바이 파텔의 능숙한 협상 덕분에 인도에 귀속되었지만, 대토후국인 니잠 왕국과 잠무 카슈미르 왕국은 끝까지 태도를 결정하지 못했고, 1948년 9월 인도는 니잠 왕국을 강제 병합했다. 잠무 카슈미르 왕국에서는 그 귀속을 둘러싸고 제1차 인도-파키스탄 전쟁이 발생했다.[153]

인도-파키스탄의 대립은 양국의 핵무장으로 확대되어, 인도를 공통의 적대국으로 하는 중국과 파키스탄의 관계를 심화시켰다. 중화인민공화국에 의한 티베트 병합과 그에 따른 중-인도 국경 분쟁(1962년~), 최초의 중국의 핵실험(1964년)을 받아 1974년 인도의 핵실험도 실시되었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핵무기와 핵탄두가 장착된 미사일 개발을 진행하여, 1998년에는 양국이 각각 핵실험을 실시했다(1998년 인도의 핵실험, 1998년 파키스탄의 핵실험). 남아시아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세계적인 국제 정치의 불안정 요인을 만들어내고 있다.

또한, 양국의 대립은 인도가 세속주의인 것에 비해 파키스탄이 이슬람교를 국교로 하고 있다는, 양국의 국가 이념의 근본적인 차이에 기인한다는 견해도 있다.[236] 이것은 인도에서는 무굴 제국의 3대 황제 아크바르가 "민족 화합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반면, 파키스탄에서는 6대 황제 아우랑제브가 이슬람의 가르침을 준수한 "영웅"으로 여겨지는 점에서 알 수 있다.

인도의 총 인구는 세계 최대 규모이며, 인도의 이슬람교도는 소수파이지만 1억 명을 넘는다.

인도와 파키스탄 양국은 2020년대에도 원칙적으로 상호 국민에게 비자를 발급하지 않지만, 파키스탄의 여행사가 주선하는 등의 형태로 인도로 이주한 사람이나 그 자손에 의한 고향 방문이 제한적이나마 실현되고 있다.[232]

8. 관점

인도의 분할은 매우 논란이 많은 사건이었으며, 오늘날까지 인도 아대륙에 많은 긴장을 유발하는 원인으로 남아있다.[177] 일부 비평가들은 영국의 성급한 결정이 분할 기간 동안의 잔혹 행위를 증가시켰다고 주장한다.[183]

루이스 마운트배튼은 과정을 서둘렀다는 비난과 더불어 인도에 유리하도록 래드클리프 라인에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179][180][181] 위원회는 분할 자체보다 최종 경계를 결정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으며, 두 국가는 명확한 경계가 정해지기 전에 독립을 얻었다. 경계선은 분할 이틀 뒤인 8월 17일에 공개되었는데, 이는 영국이 인도에서 철수하는 것을 완료하기 위해 경계 위치를 늦추었고, 영국이 분할의 부담을 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182]

독립이 실제 분할 *이전에* 선포되었기 때문에, 공공 질서 유지는 인도와 파키스탄의 새로운 정부 책임이었다. 그러나 대규모 인구 이동은 고려되지 않았고, 새로운 국경 양쪽의 소수 민족을 위한 안전 장치는 미흡했다. 법과 질서가 완전히 무너졌고, 많은 사람들이 폭동이나 학살, 또는 안전한 곳으로 탈출하는 과정에서 겪은 고난으로 사망했다. 리처드 시몬즈에 따르면, 최소 추산으로 50만 명이 사망하고 1200만 명이 집을 잃었다.[184]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영국이 현장 상황 때문에 분할을 서둘러야 했다고 주장한다.[185] 마운트배튼은 취임 직후 영국이 점점 더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내전에 개입하는 것을 피하려면 분할과 인도에서의 신속한 철수 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것을 인지했다.[185] 당시 대규모 내전이 임박했고, 제2차 세계 대전 후 영국은 자원이 제한되어 질서 유지에 불충분했을 수 있다.[186] 또 다른 관점은 마운트배튼이 너무 서둘렀을 수는 있지만, 실제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어려운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것이다.[187]

9. 기록 노력, 구술 역사 및 유산

2010년, 캘리포니아 버클리와 인도 델리에 기반을 둔 비영리 단체인 1947 분할 기록 보관소가 설립되어 분할을 경험한 사람들의 구술사를 기록하기 시작했다.[202] 2021년 6월 기준으로 18개국에서 수집된 거의 9,700건의 인터뷰가 보존되어 있으며, 인도와 파키스탄의 5개 대학 도서관(아쇼카 대학교, 하비브 대학교, 라호르 경영과학대학교, 구루 나낙 데브 대학교, 델리 대학교)과 타타 트러스트의 협력으로 공개되고 있다.[203]

2017년 8월, 영국의 예술 및 문화유산 트러스트(TAACHT)는 펀자브주 암리차르의 타운홀에 세계 최초의 분할 박물관을 설립했다.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개관하는 이 박물관은 멀티미디어 전시와 자료를 통해 분할로 이어진 정치적 과정과 그 진행 과정을 설명하고, 사건 생존자들이 제공한 비디오 및 서면 자료를 제공한다.[204]

카비타 푸리의 2019년 저서 『분할의 목소리: 알려지지 않은 영국 이야기』는 같은 이름의 BBC 라디오 4 다큐멘터리 시리즈를 바탕으로 분할을 목격하고 이후 영국으로 이주한 약 20명의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담고 있다.[205][206]

2021년 8월 14일,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분할 당시 인도인들이 겪었던 고통을 상기시키기 위해 "분할 참상 기념일"을 선포했다. 이 조치는 인도국민회의의 비판을 받았는데, 자이람 라메시는 이 날이 편향된 의도로 기획되었으며, 모디의 현재 정치적 싸움을 위한 "연료"로 외상적인 사건을 이용하려는 목적이라고 말했다.[207]

9. 1. 예술적 묘사

인도 분할과 관련된 유혈 폭동은 인도와 파키스탄의 많은 사람들에게 이 사건을 문학, 영화 및 예술적으로 묘사하게 하는 영감을 주었다.[208] 어떤 작품들은 난민 이동 중 발생한 학살을 묘사한 반면, 다른 작품들은 분할 이후의 상황과 국경 양쪽의 난민들이 직면한 어려움에 초점을 맞추었다. 분할 사건과 관련된 소설, 영화 및 예술 작품들은 오늘날까지도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있다.

인도-파키스탄 간 난민 (영상)

9. 1. 1. 문학

인도 분할을 주제로 한 문학 작품은 이스마트 츄그타이, 파이즈 아마드 파이즈, 사아다트 하산 만토, 쿠슈완트 싱 등 많은 작가들에 의해 발표되었다.[209][210]

독립과 분할로 인한 인적 피해를 묘사한 대표적인 문학 작품은 다음과 같다.[209][210]

  • 이스마트 츄그타이의 "테르히 라키르"(Terhi Lakir, 굽은 선, 1943)
  • 파이즈 아마드 파이즈의 우르두 시 "수브에 아자디"(Subh-e-Azadi, 자유의 새벽, 1947)
  • 사아다트 하산 만토의 단편 소설 "토바 텍 싱"(Toba Tek Singh, 1955)
  • 쿠슈완트 싱의 『파키스탄행 기차』(1956)
  • 마노하르 말곤카르의 『갠지스 강의 굽이』(1965)
  • 비샴 사니의 『타마스』(1974)
  • 차만 나할의 『아자디』(1975, 1977년 인도 사히티야 아카데미 상 수상)
  • 밥시 시드와의 『인도의 균열/아이스캔디맨』(1988)
  • 샤우나 싱 발드윈의 『몸이 기억하는 것』(1999)
  • 발 K. 굽타의 회고록 『잊혀진 만행』(2012)
  • 살만 루슈디의 소설 『자정의 아이들』(1980, 부커상 및 더 베스트 오브 더 부커 수상) - 1947년 8월 14일과 15일 자정에 태어난 마법 능력을 가진 아이들의 이야기[210]
  • 래리 콜린스와 도미니크 라피에르의 논픽션 『자정의 자유』(1975) - 1947년 첫 인도 독립기념일을 둘러싼 사건들을 기록
  • 만짓 사치데바의 소설 『잃어버린 세대』(2013) - 1947년 3월 무슬림 연맹의 라왈핀디 학살과 1947년 8월 국경 양쪽의 학살에서 탈출한 시크교 가족의 델리 정착과 재활, 그리고 1984년 시크교도의 수상 암살 후 폭도들에 의한 멸망을 다룸

9. 1. 2. 영화

인도의 분할은 영화에서 자주 다루어지는 주제이다.[211][212][213] 독립, 분할 및 그 여파와 관련된 초기 영화는 다음과 같다.

  • ''라호르'' (1948)
  • ''치남물'' (1950, 네마이 고쉬 감독, 벵골어)[211]
  • ''나스틱'' (1954)
  • ''바와니 정거장'' (1956, 조지 큐커 감독)
  • ''다르마푸트라'' (1961)[215]
  • 릿윅 가탁의 벵골어 3부작: ''메게 다카 타라'' (1960), ''코말 간다르'' (1961), ''수바르나렉하'' (1962)[211][214]
  • ''가름 하바'' (1973)
  • ''타마스'' (1987)[215]
  • ''분할'' (1987)[216]


1990년대 후반부터 분할을 주제로 한 영화가 더 많이 제작되었으며, 다음을 포함한다.

  • ''어스'' (1998)
  • ''파키스탄행 기차'' (1998)
  • ''헤이 람'' (2000)
  • ''가다르: 에크 프렘 카타'' (2001)
  • ''카모시 파니'' (2003)
  • ''핀자르'' (2003)
  • ''분할'' (2007)
  • ''마드라사파티남'' (2010)[215]
  • ''베굼 잔'' (2017)
  • ''총독의 집'' (2017)
  • ''사르하드'' (2019)
  • ''간디 고드세 – 에크 유드'' (2023)


전기 영화 ''간디''(1982), ''진나''(1998), ''사르다르''(1993), ''바아그 밀카 바아그''(2013) 역시 독립과 분할을 각본에서 중요한 사건으로 다룬다.

  • 파키스탄 드라마 ''다스타안''은 소설 ''바노''를 바탕으로 분할 당시 유괴 및 강간당한 무슬림 소녀들의 고통을 강조한다.
  • 2013년 구글 인디아의 "재회" 광고는 분할에 관한 내용으로 인도와 파키스탄에 큰 영향을 미쳐 두 국가 간의 여행 제한 완화에 대한 희망을 불러일으켰다.[217][218][219] 이 광고는 바이럴이 되었고[220][221] 2013년 11월 15일 TV에 공식적으로 방영되기 전에 160만 회 이상 조회되었다.[222]
  • 분할은 또한 역사적인 스포츠 드라마 영화 ''골드''(2018)에도 묘사되어 있는데, 당시 인도 국가 필드하키팀에 영향을 미친 사건을 바탕으로 한다.[223]
  • 영국 공상과학 드라마 ''닥터 후''의 2018년 에피소드인 "펀자브의 악마들"은 종교적 차이로 인해 갈라진 가족의 관점에서 분할 사건을 묘사한다.
  • 디즈니+의 TV 시리즈 ''Ms. 마블''(2022)은 파키스탄으로 도피하는 무슬림 가족의 관점에서 분할의 허구적인 버전을 묘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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